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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Food

히카리 다방. 1933년부터 이어진 오타루의 시간

by 꿀버얼 2026. 3. 31.

이세스시에서 나오니 어느새 비가 그쳤습니다. 관광안내지도를 살펴보던 중 쇼화(昭和) 8년, 즉 1933년에 개업한 커피숍 히카리(光)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히카리 ひかり 光
히카리 ひかり 光

9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장소는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는 생각에 식후 커피를 마시며 남은 코스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오타루 역 앞 큰길에서 건너편을 보면 큰 시장이 보이는데,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히카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시장에는 음식점, 가방, 옷, 액세서리 등 다양한 가게가 즐비했고, 시장을 지나다 왼쪽을 보면 빛 광(光)자가 적힌 히카리 입구가 나타납니다. 일본 여행 중 이면도로나 주택가에서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지만 오래되고 아기자기한 다방을 발견하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입니다. 히카리 역시 오래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을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빈티지 소품으로 연출한 것이 아닌, 그 자리에서 90년 가까운 시간을 온몸으로 견뎌낸 진짜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붉은 벽돌과 창틀, 방향키와 랜턴이 가득한 인테리어는 다방 이름인 '빛'과 연결되는 콘셉트였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도 랜턴이 무수히 많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커피숍이 시장보다 오래되었다는 점입니다. 건물은 전혀 손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을 짓고 리모델링했으며, 시장 현대화에 따른 구조 변경도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입구에서 사진을 찍자 주인이 정중히 촬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미 찍은 사진은 삭제를 요구하지 않으셨지만, 이후에는 전화기를 진동 모드로 하고 조심스럽게 몇 장만 촬영했습니다. 다방 안에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과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어우러져 운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동전을 넣으면 오늘의 운세가 나오는 오래된 기계도 있었는데, 이는 한국의 옛날 다방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정석적인 소품이었습니다.

두꺼운 토스트와 커피를 먹으며 이후 일정을 계획했습니다. 시립 문학·미술관 관람 후 오타루 오르골 전시장을 들리고,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기찻길을 따라 오타루 역으로 돌아가 삿포로로 가는 코스를 구상했습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문을 여는 순간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경사진 지붕에 설치된 창을 통해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오는 복도가 나타났습니다. 오래되었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은 카페 내부보다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채광이 뛰어난 화장실 가는 길은 '빛'이라는 다방 이름에 걸맞은 공간이었습니다. 일본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오래된 것을 잘 보존하고 정비해서 사용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히카리는 그러한 철학을 온전히 보여주는 공간이었습니다. 계획에 없던 오타루 여행은 예상치 못한 날씨 변화, 운 좋게 맛본 미슐랭 스시, 90년 역사의 다방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됩니다.

JR 홋카이도 레일패스를 활용한 효율적인 이동, 현지 직원의 조언을 따른 유연한 대처, 예약 없이도 명소를 경험할 수 있었던 타이밍은 여행자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이세스시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미식 경험을 넘어 일본 장인 정신을 직접 목격한 순간이었고, 히카리 다방은 세월이 만든 진정성 있는 공간의 가치를 일깨웠습니다. 우산을 꺼내지 못한 작은 실수조차 여행의 일부가 되어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